정말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게 없다. 물론 나의 인생 모토가 "1. 계획을 세워라. 계획이 있으면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다.", "2. 계획은 수정하라고 있는 것이다. 수정하지 않는 계획은 '계획'이 아니라 '아집'에 불과하다." 이다. 그리고 사실,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내 의지대로, '계획'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인생에 '후회'보다는 '추억'이 더 많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난 이후부터는 정말 정말 정말 이전처럼 살기가 너무 힘들다. 물론 결혼 이후에도 '계획'을 '논의'와 '합의'하여 세우지만, 함께 합을 맞추며 가야할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거나, 또 다시 '변덕'을 부리며 '계획'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화는 많지만) '소통'이 부족한 탓에 '계획'의 '수정' 또한 그 시기와 방향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을 잃다
제주도로 내려 올 때부터 우리가 '요식업'하는 것은 '계획'이었다. 그래서 제주도 생활을 하면서 '상권'과 '품목'을 계속 고민해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을 계속 다니고, '집사람', '우리 마누라'님께서 '창업'을 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집사람'의 '원대한' 꿈과 포부를 알지 못하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창업 품목이 정해지고 힘겹게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작년 말 혹은 올 해 초쯤 우리 마누라께서는 본인의 원대한 꿈과 포부를 밝히며 창업을 하더라도 자신의 명의로 하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제주도에 다른 가족과 친지가 없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의 명의로 진행할 수 없었기에 결론은 '나'의 명의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아주 쉽게 도달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직장에 알렸고, 퇴사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직장은 나의 급여 중 대부분을 지자체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었고, 내가 '사업자'를 가지게 되면 그 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에 나를 지속적으로 고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을 잃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되다
'퇴사'를 하고 난 후에 우리 부부는 본격적으로 지역 상권을 비교해가며 창업지을 모색했다. 상권에서부터 우리 부부는 큰 이견을 보였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성상일출봉 인근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반면, 집사람은 서귀포시 1청사 주변의 서귀동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나는 우선 집사람이 핵심 인력이기에 그 의견을 존중했다. 그래서 집사람은 서귀동과 1청사 주변 부동산을 방문하였고, 나는 성산과 비교가 될 수 있는 표선 상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집사람은 본인의 생각과 실제 상권의 분위기나 흐름, 그리고 물건에 실망했고, 나는 표선의 터무니 없는 가격에 실망했다. 그 후 우리는 성산일출봉과 세화, 월정리, 김녕 상권을 살펴보았다. 세화, 월정리, 김녕 상권도 우리의 방향과는 차이가 있었고, 큰 이점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 성산일출봉 상권이 좋은 선택지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물건이 없었다. 우리가 마음에 들었던 상가는 불법 증축을 한 곳이기에 법적 문제를 피해가기 어려워 보였다. 상가 주인은 "지금까지 전혀 문제없었어. 그냥 하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하나? 내가 읍사무소에 얘기하면 문제될게 없어."라고 말했지만, 우린 그 말만 믿고 계약을 할 수는 없었다. 또,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아주 깔끔하고 우리와 잘 맞아 보이는 상가도 법적 문제가 있었다. '도면' 신고도 없이 리모델링을 했던 것이다. 주인은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건축사무소'와 논의하며 우리가 요구했던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법적으로 불가하였다. 마지막으로 '당근'을 통해 찾은 상가는 내가 원하던 조건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인테리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보였고, '일반음식점'을 낼 수 있으며, 권리금도 비싸지 않았다. 단지, 주차장이 없어 손님들을 약 5분 거리의 공용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계약을 해도 될 것 같아 연락을 취했다. 가게를 당근에 올린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먼저 연락한 사람이 있었으며, 그 사람이 투자를 하기로해서 가게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운영하기로 했다는 답변을 듣게 됐다.
요식업이라는 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들려 했던 우리 부부은 상당히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래도 서두르지 말고 제대로 된, 실패 확률을 낮춰줄 수 있는 상가에서 시작하자는 나의 의지와는 달리, 집사람은 그야말로 지쳐버린 듯 보였다. 그리고 집사람은 그대로 포기해버렸고, 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제주도의 한계
'제주도'에서 남자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제주도를 2022년 1월에 내려와서 밭일과 '무' 공장, 갈치 채낚시 선원, 그리고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했었다. 가릴 것 없이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제주시 혹은 서귀포시가 아니라면 '남자'가 '제주도'에서, 그것도 '40대 가장'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지금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 '워크넷'을 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출근하면 되지 않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제주도'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뽑는 사람도 다 안다. '성산포'에서 출근한다고 하면 '날씨와 거리 문제로 출근이 어려운 날이 많겠구나'라고. 그래서 그들도 잘 뽑지 않는다. 실제 나도 여러 곳을 지원하고 수 차례 듣게 된 답변이다.
어쩌다 보니 주식 트레이딩
그렇게 흘러 주식 트레이딩을 하게 되었다. 정말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식 트레이딩을 하게 되었다. 요식업을 창업하려 했는데 그 계획이 중단돼서, 가족을 부양할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여기서 일자리를 구해봐야 주 5일하면 220, 주 6일하면 250 정도 버니 그럴 바에는 주식 트레이딩을 하는게 좋지 않을까?
이제 차트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매매 기법들을 공부하고 실전에 적용하며 돈을 잃겠지. 그러다 돈을 잃지 않는 법을 찾으면 지속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초기 자금을 잃은 채 다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겠지.
화이팅! 세 아이의 아빠!
갈치 채낚시 배에 오른 첫 날, 4시간째 어장을 향해 달리는 배 위에서 배멀미에 시달리고 있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가장은 뭐든지 이껴내야 한다."
그래. 이겨내고, 생존해서, 성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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