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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라이프

제주 일상여행, 김만덕 객주에서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feat.다자녀)

by 안토르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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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상여행 숙제(?) 

오늘 집사람이 짠 여행의 일정은 과히 숙제에 가까웠다. 그리고 난 그 숙제를 안전하게 끝마쳐야 하는 운전기사!

 

집 > 국립제주박물관 > 김만덕 객주 > 김만덕 기념관 > 제주수학체험관 > 넥슨컴퓨터박물관 > 집

 

카카오맵 기준으로 94.3km가 나오는 거리. 고속도로가 없는 제주도에서 100km에 가까운 거리를 당일로 여행이라...

이 여행에 대한 리뷰는 우선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먼저 얘기할까 한다.

 

가장 먼 자리로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김만덕 객주'를 향했다.

제주도의 '거상' 혹은 '의인'으로 칭송받는 '김만덕'의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기념하고 전달하기 위해 실제 객주가 있던 터 위에 재현한 곳이 바로 '김만덕 객주'다. 제주도 건축 양식인 '안거리', '밖거리'가 재현된 객주를 둘러보다 '주막'으로 들어갔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남성 셋의 한 팀만 있을 뿐 주점은 한가했다. 우리가 아이 셋의 5인 가족이 되다 보니 음식점을 들어가면 항상 다른 팀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멀리 앉는 습관이 생겨, 오늘도 그들과 가장 먼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막내 밥부터 먹이기 시작했는데, 막내는 최근 부쩍 다양해진 본인의 옹알이를 마음껏 터트렸다. 이때부터 정신이 없었다. 막내 옹알이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혹여나 입맛에 맞지 않아 뱉어내면 받아서 다른 걸로 바꿔주고, 그러다 간간히 둘째 밥 먹는 걸 챙겨줘야 했다.

 

그래. 멀리 앉길 잘했다. 조용히 식사를 즐기던 사람들에게 '민폐'를 전혀 안 끼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사전 예방부터 지금까지 계속 노력하고 있으니 이해해 주길 바랄 수밖에.

 

생각지도 못했던 노인(?)의 품격

'주막'의 음식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정식을 시켰는데, 일하시는 분이나 주인분이나 모두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사전에 알아서 해주셨다. 영유아 의자, 아이들 수저를 챙겨주거나 음식의 간을 약하게 할 것을 먼저 우리에게 제안을 해서 우리도 아이들에 음식을 먹이기 한결 편했다. 특히, 아이들은 '계란찜'에 아주 큰 만족, 속된 말로 '환장'을 했다. 나는 '간장 제육볶음'이 아주 만족스러워 그걸 중심으로 식사를 하다 아이들의 먹성으로도 다 먹지 못한 고등어구이를 덤으로 챙겨 먹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방금 결제하고 나가신 흰머리의 백발 어르신 보셨어요?"

백발? 어르신? 우리 전에 온 남자 셋의 팀에 그런 사람이 있었나? 그런데 왜 그러지?

 

"그분이 나가시면서 여러분 테이블도 모두 결제하고 가셨어요?"

어..... 무슨 일이지....?

 

"그리고 그분이 꼭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자기는 애들이 어릴 때 같이 시간도 많이 보내지 못했고, 여행도 자주 다니지 못했답니다. 헌데 여기는 아이가 셋이라 힘들겠지만, 가능하면 지금처럼 여행을 자주 다니시면서 애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난 주막에 처음 들어올 때 그 사람들이 관광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주도민인데 주말에도 어디선가 일을 하고 점심을 해결하러 온 사람들로 생각했기에 주인에게 되물었다. "혹시, 그분이 자주 오시는 분이신가요?"

 

"아뇨. 이제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올라가신다고 하셨어요."

 

뭐지?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나? 그냥 앉아서 밥을 먹고 있어도 되나? 집사람과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우리를 현실로 불러들인 건 먹이를 달라고 졸라대는 아기 새 셋이었다. 

 

솔직히 새벽시간으로 접어든 지금도 벙벙하다. 다자녀 혜택은 누려봤지만, 이런 일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니까.

인사를 하러 뛰쳐나갔어야 했나...?

 

아무튼 그래서 이 글을 남긴다.

혹여나 그분이 '김만덕 객주'를 검색하실까 봐. 검색량이 많은 키워드가 아니니 혹시나 이 글을 보실까 봐.

 

"정말 감사히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과 지금처럼 추억을 많이 쌓아가며 살게요. 조심히 잘 올라가시고, 육지에서도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뜻밖의 나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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